금융 제재 회피 수단 '금': SWIFT 없이 황금을 움직이는 우회 통로 분석
국제 금융 제재에 막힌 거래의 마지막 수단, ‘금’. 비공식 루트를 따라 움직이는 금의 흐름은 어떻게 작동할까요?
1. 금융 제재와 금의 독립적 속성
글로벌 금융 제재는 주로 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 시스템을 기반으로 작동합니다. 특정 국가나 개인이 SWIFT에서 차단되면 국제 송금, 외환 거래, 결제 시스템에서 사실상 고립됩니다.
그러나 금은 디지털 네트워크가 아닌 실물 자산입니다. 국경을 넘을 수 있고, 익명성이 높으며, 국가 간 신뢰 없이도 교환될 수 있는 희소자산입니다. 이런 특성 덕분에 금은 ‘탈금융화된 자산 이동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2. 제재 대상국의 금 보유 전략
대표적인 제재 국가인 이란,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은 국제 금융망에서 배제되자 자산 보전 수단으로 금을 대량 보유하거나 매입해 왔습니다. 이는 제재로 동결될 가능성이 있는 외화 대신, 외부로 운송 가능한 가치 저장 수단을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예를 들어 2020년 이후 베네수엘라는 자체 보유 금괴 일부를 해외 은행이 아닌 터키의 정제소로 수출한 후, 이를 현금화해 식량·약품 수입 비용으로 사용했다는 보도가 존재합니다. 이는 국제은행 계좌 없이 이루어진 대표적인 '금 기반 우회 거래'입니다.
3. 우회 루트 1: 비공식 운송과 금 현물 거래
공식 금융망을 사용하지 못하는 제재 대상은 종종 현물 금괴를 비공식 운송 네트워크를 통해 이동시킵니다. 이 방식은 항공 운송보다는 육로·해상 운송, 또는 제3국 경유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는 금이 밀수입 형태로 국경을 넘어 제재 회피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두바이, 이스탄불, 홍콩 등은 제3국 중개 허브로 자주 등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금은 물물교환, 로컬 통화 현금화, 상품 결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유통됩니다.
4. 우회 루트 2: 제3국 중개 거래
제재 대상 국가는 종종 우호적인 제3국과 협력해 금을 환전하거나 거래합니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금이 중국 또는 인도에서 매입되거나, 제3국 금융회사를 통해 '무기명 거래'로 유통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 금은 통상 직접적인 수입이 금지된 제재 품목(기계, 원유, 식량 등)과 교환되며, 중개국은 제재의 사각지대에서 거래를 촉진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공식 통계로 포착되기 어렵기 때문에 글로벌 금 유통량과 실제 공급 간 괴리를 만들어냅니다.
5. 금이 제재를 뚫는 이유: 가치, 익명성, 실물성
금이 제재 회피 수단으로 기능하는 데에는 몇 가지 구조적 이유가 있습니다:
- 익명성: 실물 자산이므로 거래자 추적이 어렵고, 소유권 증명이 모호할 수 있습니다.
- 글로벌 수용성: 어떤 통화보다 널리 받아들여지는 교환 수단입니다.
- 보관과 운송 용이성: 고밀도 자산으로 적은 공간에 큰 가치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 즉시 현금화 가능: 국제 정제소 또는 현지 금시장에서 바로 현금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금은 법정화폐가 차단된 환경에서도 작동하는 유일한 국제 교환 수단이 됩니다.
6. 금의 우회 거래에 대한 규제 시도
미국과 EU는 최근 몇 년 사이 러시아산 금의 공식 수입 금지, 중국과 아프리카 간 금 거래 경로 감시 강화 등 다양한 제재 보완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금이 실물로 이동하고 거래되는 특성상 완전한 차단은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국제기구는 금이 불법 자금 세탁 및 제재 회피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추적 가능한 거래체계를 요구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글로벌 공통 인증 시스템은 미비한 실정입니다.
금융망을 떠나 금은 또 다른 경로를 만든다
제재 환경에서 금은 단순한 안전자산을 넘어 실질적인 유동성 수단으로 작동합니다. 국제 송금이 차단된 상황에서 금은 ‘보이지 않는 은행’이자, ‘이동 가능한 가치 저장 수단’이 됩니다.
글로벌 투자자와 정책 입안자는 금의 이러한 비금융적 기능과 유통 흐름을 함께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식 통계 밖의 금이 만들어내는 현실이, 때때로 금융시장보다 더 강력한 파급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